시편 9편 10편 재판장이시며 변호사이신 하나님.
시편에 등장하시는 하나님은 주로 재판장이다. 법적 용어를 사용한다. 변호하시며, 판결해달라는 요청이 있다. 재판장이시면서 나를 변호하시는 분, 어떻게 보면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 판사가 변호사까지 겸하고 있는 셈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와 기도를 드리다가 원수를 갚아달라고 신원한다. 그러다가 재판하시는데 악한 사람을 재판하는 것은 물론 많은 나라를 책망하고 망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성읍을 심판한 일들, 범위가 사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더 나이가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신다고 하셨다.(시9:8)
재판장이신 하나님.
그 재판장의 이름을 아는 자는 재판장을 의지하오리니 왜냐하면 재판장을 찾는 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붙드신다고 하셨다.
재판장을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이유가 재판장이 지켜 주시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고, (시9:12, 시10:12) 돌보신다.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악한 것들이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과연 재판장이시다. 또한 우리를 변호하시는 분이시다.
심판자라는 표현은 딱딱한 느낌이 있다. 매몰차게 에누리 없이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가 바로 심판자이다. 재판장은 판결에 정확하도록 집중한다. 판결문의 한 단어 한 글씨 조차 꼼꼼하게 살피고 정확한 표현으로 판결을 내리기에 재판장의 이미지는 차갑다. 또한 변호하는 자도 중요한 것은 바로 정확하게 재판장에게 변호하는 내용을 전달한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더 정확하신 분이시다. 그 차갑게 딱딱한 분께서 이 땅의 가난한 자와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에겐 한 없이 따뜻한 분으로 함께 하고 계신다.
세상의 사람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계시다면 세상에 악이 판치도록 그냥 두시겠냐? 왜 불의가 득세하느냐? 항상 악인이 의인을 이기는 구도로 세상은 인식하고 있다. 항상 당하는 쪽은 가난하고 약자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시선이 멈추신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약자들과 가난한 자와 함께 할 것이다.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있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울고, 어려움에 처한 자에게 도움을 주는 자로 살게 하소서.